Essays 써먹을 수 없음에 대하여 독서모임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카뮈와 밀란 쿤데라는 무의미를 추구했고, 축의 시대 사상가들은 대부분 의미를 잘 찾는 방법을 말했는데, 각자는 무의미와 의미 중 어느 쪽을 더 추구하는가. 전제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카뮈는 무의미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의 무의미를 직시했을 뿐이다. <시지프 신화>의 결론은 오히려 정반대다. 무의미한 세계에서 자살하지 않고,
Essays 사물의 덧없음 - Mono no aware 종로의 한 이자카야였다. 카운터석 여섯 자리뿐인 가게. 친구가 대구로 내려가기 사흘 전이었다. 십 년 넘게 서울에 살았던 그가, 결국 고향 근처로 돌아가기로 했다. 평소처럼 사케를 시켰다. 평소처럼 사시미를 시켰고, 평소처럼 마지막에 오차즈케를 시켰다.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젓가락 끝에 닿는 생선의 결, 잔에 얼음이 녹으며 내는 소리, 주인장이
Essays 돌아갈 수 없는 고향 - Hiraeth 노르웨이 어딘가, 바닷가 절벽 위에 집이 한 채 있다. 나무로 지어진 집이다. 창문이 크고, 창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안에는 벽난로가 있다. 밖은 춥다. 안은 따뜻하다. 나는 그 집 안에 있다. 혼자이거나, 좋아하는 사람과 둘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파도 소리가 들린다. 해야 할 일은 없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이 집은 존재하지
Essays 존재하지 않는 것의 그리움 - Saudade 다니던 초등학교가 보이는 아파트에 살게 된 적이 있다. 스물다섯, 친구 둘과 함께였다. 복도에 나가면 운동장이 보였다. 낮에는 아이들이 뛰어다녔고, 저녁이면 조명 없는 운동장은 어둠 속에 가라앉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이 딱히 행복하지 않았다. 잘 어울리지 못했던 기억이 더 많다. 그런데 밤마다 운동장을 내려다보면, 무언가가 가슴 한쪽을 눌렀다. 그리움이라고 부르기엔 그리워할
Essays Litost - 자기 비참함의 자각 누군가의 좋은 소식을 듣고 기뻐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될 때가 있다.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손가락이 멈춘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사람의 게시물. 승진, 합격, 계약, 론칭. 무엇이든 좋다. 겸손한 듯 쓴 캡션에 숫자는 빠지지 않는다. 축하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다.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 댓글도 달지 않는다. 그냥 피드를 넘긴다.
Essays Kintsugi - 금으로 잇는 상처 편집자의 일은 지우는 것이다. 오탈자를 지우고, 비문을 지우고, 불필요한 문장을 지운다. 표지의 미세한 색상 차이를 잡고, 판형의 밀리미터 단위 어긋남을 교정한다. 완성된 책은 매끄러워야 한다. 이음새가 보이면 안 된다. 독자가 편집의 흔적을 의식하는 순간, 편집은 실패한 것이다. 5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체득한 미학이 있다. 결함은 숨겨야 한다. 과정은 보이지
Essays Sisu - 조용한 근성 통장 잔고가 34만 원이었다. 출판사를 세운 지 1년쯤 됐을 때의 일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책이 연달아 잘 안돼서 돈이 없었다. 사무실 월세가 밀렸고, 물류 비용을 두 달째 못 줬고, 다음 달 인쇄비를 어디서 끌어올지 감이 안 잡혔다. 스물넷에 출판사를 차리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반으로 갈렸다. 응원과 걱정. 1년
Essays Dolce far niente :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 Dolce far niente :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 피렌체의 어느 식당에서, 파스타가 나오지 않았다. 친구와 둘이서 들어간 골목 안쪽 식당이었다. 자리에 앉고, 메뉴를 보고, 주문을 했다. 거기까지는 서울과 같았다. 그 다음이 달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0분. 15분. 물만 놓여 있는 테이블에서 나는 슬슬 안절부절해지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메일을 확인하고,
Essays Kalsarikännit - 속옷 차림의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어서 핸드폰을 집었고, 핸드폰을 집은 자신이 싫어서 다시 내려놓았다. 내려놓은 핸드폰이 다시 손에 들려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그 어려운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단어 하나일지도 모른다. Kalsarikännit 속옷 차림의 자유 그 주는
Essays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Dio입니다.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한 편씩 에세이를 보내드립니다. 『번역할 수 없는 마음들』이라는 제목의 연재입니다. 세계의 언어 속에서 한국어로 옮길 수 없는 단어 25개를 골라, 그 단어들을 거울 삼아 우리의 감정을 들여다봅니다. 25개의 단어가 모이면 한 권의 책이 됩니다. 첫 번째 글은 프롤로그입니다. 이 연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왜
Essays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자해 Intro. 당신의 자랑은 틀렸다: 겸손한 척하는 오만 채용 면접이나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저의 단점은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단점인 척하지만, 속으로는 '나는 이렇게 기준이 높고 치열하게 일하는 사람이야'라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Humblebrag)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완벽주의를 성공을 위한 필수
Deep Dive Featured 조림의 미학 Prologue. 180분의 침묵, 그리고 전율 2026년 1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 세미파이널 현장. 미션명 '무한 요리 천국'. 룰은 잔인할 만큼 심플했습니다. "제한 시간 180분. 횟수 무제한. 가장 높은 점수 하나로 승부한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이 룰을 확률 게임으로 해석했습니다. "빨리 만들어서 5번 제출하면, 그중 하나는 터지겠지.
Essays Big Short 2.0: 광기와 고독 사이 ; 마이클 버리는 왜 다시 역주행을 시작했는가? 카산드라의 저주와 축제의 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산드라를 아십니까?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아무도 그 예언을 믿어주지 않는 저주를 받은 인물입니다. 그녀가 "트로이의 목마를 들여놓으면 멸망한다"고 외쳤을 때, 사람들은 승리에 취해 그녀를 미치광이 취급했습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트로이의 멸망이었죠. 월스트리트에도
Essays 우리는 왜 좋아하는 것조차 눈치를 볼까? 취향의 인플레이션 시대입니다. 와인을 마셔도 품종을 알아야 하고, 영화를 봐도 이동진 평론가의 별점을 먼저 확인합니다. '알못(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무시당할까 봐, 우리는 좋아하는 감정조차 학습하고 검열합니다. 즐거움의 영역마저 숙제가 되어버린 피로한 사회. 오늘 소개할 영상은 이 강박을 깨부수는 통쾌한 'B급 정신'을 보여줍니다. B급은
Essays 알고리즘의 밖으로 행군하라: 서점이라는 아날로그 방공호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되어 있습니다. 혐오와 갈등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기술이 너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기반의 알고리즘은 효율적입니다. 내가 좋아할 만한 것만 쏙쏙 골라줍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바로 '타인의 소거&
Essays 1년의 환상, 10년의 혁명 - 아마라의 법칙으로 다시 쓰는 2026년 당신의 다이어리가 쓰레기통으로 가는 이유 매년 1월 1일, 인류는 집단적 최면에 걸립니다. "올해는 다를 것이다." 헬스장 등록 매출의 70%가 1월에 발생하고, 금연 보조제의 판매량이 급증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희망'이라고 부르지만, 뇌과학적으로는 도파민 중독에 가깝습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행위 자체가 주는 쾌락에 취해, 우리는 자신의 미래
Essays 《번역 이후의 번역》 : 좋은 번역이란 무엇이며, AI는 번역을 어떻게 바꾸는가 목차 PART I.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 번역의 본질을 다시 묻다 1장. 우리는 왜 아직도 ‘좋은 번역’을 설명하지 못하는가 2장. 번역을 언어 문제로 보는 순간, 모든 것이 어긋난다 3장. 번역은 선택의 연쇄다 ― 판단의 순간들 4장. 좋은 번역의 세 가지 조건 1) 불가피성 2) 위험의 동등성 3) 해석적 도달점의 일치
Essays 나는 ‘독창성’이라는 신화에 반대한다 독창성(Originality) 이 단어만큼 작가 지망생의 발목을 잡는 숭고한 신화도 없다. 이들은 새로운 것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아무도 한 적 없는 이야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그 낭만적인 순간을 꿈꾼다. 헛소리다. 나는 순수한 창조를 믿지 않는다. 어설프게 독창성을 흉내 내려고 애쓰는 글일수록, 텅 비어있기 마련이다. 왜? 연결할 재료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