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su - 조용한 근성
통장 잔고가 34만 원이었다.
출판사를 세운 지 1년쯤 됐을 때의 일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책이 연달아 잘 안돼서 돈이 없었다. 사무실 월세가 밀렸고, 물류 비용을 두 달째 못 줬고, 다음 달 인쇄비를 어디서 끌어올지 감이 안 잡혔다. 스물넷에 출판사를 차리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반으로 갈렸다. 응원과 걱정. 1년 만에 걱정 쪽이 맞아가고 있었다.
그때 내가 한 일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그냥 다음 날도 출근했다. 그다음 날도. 원고를 읽고, 거래처에 전화하고, 기획안을 썼다. 극적인 전환점 같은 건 없었다. 다만 멈추지 않았다.
핀란드어에 시수(sisu)라는 단어가 있다. 어원은 시수스(sisus), '안쪽' 또는 '내장'이라는 뜻이다. 배 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힘. 영어로 옮기면 grit, perseverance, inner strength 같은 단어가 동원되지만, 어느 것도 정확하지 않다.
핀란드인들은 시수를 자기 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말한다. 동시에 정확히 정의하기 어렵다고도 말한다. 종교나 사랑처럼 느끼는 것이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시수 연구자 에밀리아 라흐티는 이렇게 정의한다. 견딜 수 없는 도전을 뚫고 나가는 능력. 중요한 건 '뚫고 나가는'이다. 시수는 견디는 것과 다르다. 견디기(endurance)는 버티는 것이고, 시수는 버티면서 앞으로 가는 것이다.
나무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는 것은 시수가 아니다. 그건 무모함이다. F1 레이서 미카 하키넨은 이렇게 설명했다. 랠리카를 숲속에서 극단적으로 빠르게 몰면서, 브레이크를 늦게 밟고, 스로틀을 일찍 열고, 코너의 꼭지점에 최대한 가까이 붙을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시수다. 무모함과 용기 사이의 가느다란 선.
이 단어가 세계에 알려진 건 1939년 겨울전쟁 때다.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했다. 병력은 50대 1. 탱크도, 전투기도, 보급도 비교가 안 됐다. 핀란드는 패배가 확실한 전쟁이었다. 영하 40도의 겨울, 핀란드 병사들은 하얀 위장복을 입고 스키를 타며 소련군을 괴롭혔다. 정규전에서는 이길 수 없으니 숲에 숨어 게릴라전을 벌였다. 화력이 아니라 인내로 싸운 전쟁이었다.
뉴욕 타임스는 1940년 1월, 핀란드를 설명하는 단어로 시수를 소개했다. 캘리포니아보다 약간 큰 이 나라가, 세계 면적의 7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의 침공에 이토록 용감히 맞선 것을 이해하려면, 시수를 이해해야 한다고.
핀란드는 결국 영토 일부를 내줬지만, 독립은 지켰다. 50대 1의 전쟁에서 나라가 사라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세계는 놀랐다. 핀란드인들은 그걸 기적이라 부르지 않았다. 시수라 불렀다.
전쟁 이후 시수는 핀란드 국민 정체성의 핵심이 되었다. 시수를 이름에 붙인 자동차와 장갑차가 있고, 남극의 산에도 시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핀란드 운동선수들이 보여주는 끈질긴 경기력에도 시수가 따라붙는다. 마라톤 영웅 파보 누르미, F1 챔피언 키미 라이코넨.
핀란드에서 시수는 형용사이자 동사이자 삶의 방식이다. 영하 20도에 자전거로 출근하는 것도, 사우나에서 얼음물로 뛰어드는 것도, 핀란드인들은 시수라 부른다.
그런데 시수에는 그림자도 있다.
핀란드어에 파한시수이넨(pahansisuinen)이라는 단어가 있다. '나쁜 시수를 가진'이라는 뜻인데, 적대적이고 악의적인 사람을 가리킨다. 라흐티의 설문조사에서도 시수가 과하면 고집불통, 무모함, 자기중심성으로 이어진다는 응답이 나왔다. 시수는 이성과 자기 연민으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그만둬야 할 때와 밀고 나가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것. 그 판단력이 없는 시수는 독이 된다.
한국에도 이 감정에 가까운 것이 있다. '근성', '오기', '악바리'. 한국인은 시수를 이해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IMF 외환위기를 금 모으기로 돌파한 나라. 전쟁 후 폐허에서 반도체 강국이 된 나라. 한국의 역사는 시수의 연속이다.
하지만 결이 다르다.
핀란드의 시수는 조용하다. 핀란드인은 시수를 보여주지 않는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 확인되는 것이다. '그건 시수가 필요했지'라고 끝나고 나서야 말한다. 시수를 발휘한 사람은 승리해도 소란을 피우지 않고, 실패해도 그냥 다음으로 넘어간다.
한국의 근성은 소리를 낸다.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고, 할 수 있다고 소리친다. 운동 경기에서, 수능 시험장 앞에서, 스타트업 데모데이에서. '화이팅'이라는 단어가 한국의 근성을 대표한다. 남에게 보이는 결의. 함께 소리치면서 올라가는 에너지.
한국에서는 버티는 과정 자체도 콘텐츠가 된다. '고군분투기', '성장 스토리', '맨땅에 헤딩'.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미덕이고, 극복의 서사를 공유하는 것이 문화다. 반면 핀란드에서 시수는 말해지지 않는다. 시수를 발휘한 사람에게 어땠냐고 물으면, 대개 어깨를 으쓱한다.
둘 다 힘이다. 하지만 방향이 다르다. 시수는 안에서 밖으로 스며나오고, 화이팅은 밖에서 안으로 밀어 넣는다. 어느 쪽이 낫다는 게 아니다. 다만 한국에는 조용히 버티는 것에 이름을 붙여주는 단어가 없다는 것. 말하지 않아도 되는 근성, 보여주지 않아도 인정받는 인내. 그런 단어가 있다면 좀 더 편하게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출판사가 망하지 않은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네 번째 책이 예상보다 잘 팔렸고, 투자가 들어왔고, 그사이에 쌓아둔 기획안 중 하나가 터졌다.
하지만 운이 오기까지의 시간을 버텨야 했다. 그 시간 동안 나를 지탱한 건 확신이 아니었다. 확신은 통장 잔고와 함께 바닥났다. 남은 건 습관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고, 사무실에 가고, 노트북을 여는 습관. 되든 안 되든 다음 원고를 읽는 습관.
통장 잔고 34만 원이 아니라 34만 원의 다음 날도 출근한 것이 갈림길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그때의 나에게 시수라는 단어를 알려줬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아마 아니다. 그냥 똑같이 출근했을 것이다. 다만 그 출근에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리고 핀란드 사람들이 500년 동안 불러온 그 이름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줬을 수도 있다.
시수는 화려하지 않다. 극적이지도 않다. 다음 날도 출근하는 것. 다음 페이지도 넘기는 것. 그게 전부다.
그게 전부인데, 그게 제일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