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창성’이라는 신화에 반대한다
독창성(Originality)
이 단어만큼 작가 지망생의 발목을 잡는 숭고한 신화도 없다. 이들은 새로운 것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아무도 한 적 없는 이야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그 낭만적인 순간을 꿈꾼다.
헛소리다. 나는 순수한 창조를 믿지 않는다. 어설프게 독창성을 흉내 내려고 애쓰는 글일수록, 텅 비어있기 마련이다. 왜? 연결할 재료가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순수한 창조는 없다. 모든 창조는 기존에 있던 것들의 새로운 조합일 뿐이다.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발명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떠돌던 이탈리아의 옛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당대 최고의 비극으로 ‘연결’했을 뿐이다. 위대한 글쓰기는 발명(Invention)이 아니다. 발견(Discovery)이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행위다. 흩어져 있던 점들을 발견하고, 그것이 하나의 그림이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남들이 모두 현상을 볼 때, 작가는 그 이면의 욕망을 발견한다. 남들이 모두 사실을 볼 때, 작가는 그 이면의 맥락을 발견한다. AI가 100만 개의 데이터를 보여줄 수는 있어도, 그 데이터가 왜 중요한지 발견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글쓰기는 연결(Connection)의 문제다. 세상의 모든 아이디어와 팩트는 이미 존재한다. A와 B라는 팩트가 있다. 99명의 작가는 A를 A로, B를 B로 쓴다. 이들은 성실한 리포터에 불과하다. ‘진짜 작가’는 A와 B 사이에 아무도 본 적 없는 다리를 놓는다. 뇌과학(A)과 17세기 미술(B)을 연결해 새로운 인간관을 제시한다. 양자역학(A)과 불교 철학(B)을 연결해 삶의 의미를 묻는다.
이 연결이 바로 ‘관점’이다. 그리고 이 관점이야말로 ‘독창성’의 진정한 모습이다. AI는 연결에 취약하다. 학습된 범위 안에서는 탁월한 모범 답안을 내놓지만, 전혀 다른 범주에 있는 두 개념을 의도적으로 연결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진 못한다. 그것은 효율의 영역이 아니라 ‘편향’과 ‘취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없다며 빈 페이지를 쳐다보고 있는가? 당연하다. 당신은 발명이라는 유령을 좇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창조라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신의 서가, 당신의 경험, 당신의 지독한 편향 속에 이미 모든 재료는 준비되어 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창조가 아니라, 그 재료들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것이다.
발명하려 하지 마라. 발견하고 연결하라. 그것이 이 ‘모든 것이 이미 존재하는’ 시대에 작가로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