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의 밖으로 행군하라: 서점이라는 아날로그 방공호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되어 있습니다. 혐오와 갈등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기술이 너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기반의 알고리즘은 효율적입니다. 내가 좋아할 만한 것만 쏙쏙 골라줍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바로 '타인의 소거'입니다. 내 피드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 등장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은 틀린 것 혹은 보이지 않는 것이 됩니다. 이해의 근육이 퇴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Chapter 1. 효율성의 함정과 세렌디피티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온라인은 검색(Searching)의 공간이고, 오프라인은 발견(Discovery)의 공간입니다. 목적 구매는 효율적이지만, 확장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당신이 경제학 책을 검색하면 온라인 서점은 또 다른 경제학 책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동네 서점의 서가를 걷다 보면, 경제학 코너 바로 옆에 꽂힌 시집을 우연히 마주치게 됩니다. 이 우연성(Serendipity)이야말로 창의성의 원천이자, 내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망치입니다. 서점은 비효율적이라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 비효율 속에 뜻밖의 만남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Chapter 2. 시공간을 초월한 대화의 기술
광고 카피는 말합니다.
"백 년 전을 살다 간 사람, 1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사람을 만난다."
책은 가장 저렴하고 가장 강력한 VR 기기입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우리는 1920년의 경성으로, 혹은 2024년의 가자 지구로 이동합니다. 영상은 수동적입니다. 보여주는 대로 봅니다.
하지만 텍스트는 능동적입니다. 나의 뇌가 문장을 소화하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비로소 이미지가 생성됩니다. 이 능동적인 과정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책이 가진 공감의 힘입니다. 죽은 자와 대화하고, 먼 곳의 타인과 접속하는 이 훈련이야말로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비결입니다.
Chapter 3. 불편함을 견디는 힘, 문해력
요즘 문해력 논란이 뜨겁습니다. 단순히 글자를 읽는 능력이 아닙니다. 문해력의 핵심은 맥락을 파악하고, 나와 다른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인내심입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3줄 요약을 원하고, 결론만 묻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요약될 수 없습니다. 서점에 간다는 건, 그 복잡하고 지루하고 때로는 불편한 타인의 서사를 기꺼이 읽어내겠다는 의지입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생각"을 마주했을 때, 책을 덮지 않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그 행위가 바로 관용의 시작입니다.
Action Plan: 이번 주, 알고리즘을 배신하는 3가지 방법
- 목적 없는 방문: 살 책을 정하지 말고 서점에 가십시오. 그리고 표지가 마음에 들거나, 제목이 낯선 책을 무작정 집어 드십시오.
- 불편한 분야 읽기: 평소라면 절대 읽지 않을 분야(예: 개발자라면 인문학, 보수라면 진보, 남성이라면 페미니즘)의 책을 한 챕터만 읽어보십시오. 판단하지 말고, '왜?'라고 물으십시오.
- 물리적 페이지 터닝: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을 읽으십시오.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는 우리의 뇌를 '깊은 사고 모드'로 전환하는 스위치입니다.
Epilogue: 서점으로 갑시다
고단샤의 광고는 "인류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서점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거창해 보이나요? 아닙니다.
혐오와 전쟁은 '상대방을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책은 상대방 역시 나와 똑같이 숨 쉬고 아파하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증거물입니다.
그러니 부디, 서점으로 갑시다.
그곳에서 우리는 안전하게 타인을 만나고, 위험하지 않게 모험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세계가 좁아지지 않도록, 책장이라는 문을 활짝 열어두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