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ce far niente :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
Dolce far niente :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
피렌체의 어느 식당에서, 파스타가 나오지 않았다.
친구와 둘이서 들어간 골목 안쪽 식당이었다. 자리에 앉고, 메뉴를 보고, 주문을 했다. 거기까지는 서울과 같았다. 그 다음이 달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0분. 15분. 물만 놓여 있는 테이블에서 나는 슬슬 안절부절해지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메일을 확인하고, 카톡을 훑고,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그러다 문득 주변을 봤다.
옆 테이블의 중년 부부는 와인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음식은 아직 안 나왔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건너편 테이블의 할아버지 셋은 에스프레소 잔이 빈 지 오래인데도 자리를 뜰 생각이 없었다. 아무도 시계를 보지 않았다. 아무도 핸드폰을 보지 않았다.
나만 들고 있었다. 핸드폰을.
돌체 파르 니엔테(dolce far niente). 직역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달콤함'. 돌체(dolce)는 달콤한, 파르(far)는 하다, 니엔테(niente)는 아무것도 아닌 것. 이탈리아어에서 이 표현의 첫 단어가 '달콤한'이라는 사실이 핵심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그 차이가 전부다.
이탈리아 친구에게 이 표현의 정확한 뜻을 물으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절차가 아니라 충동이고, 모토가 아니라 체질이기 때문이다.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에 배어 있는 것.
그 체질의 뿌리는 깊다. 라틴어에 오티움(otium)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공적 업무인 네고티움(negotium)의 반대말. 주목할 건 어원의 방향이다. 네고티움은 'nec-otium', 즉 '여가가 아닌 것'이다. 여가가 먼저고, 일이 그 부정형이었다. 로마인들에게 기본값은 쉼이었고, 일이 예외였다.
이건 단순한 어원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관의 문제다. 오늘날 우리는 '일하지 않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일이 기준이고, 쉼이 그 부재다. 로마인들은 정반대였다. 쉼이 기준이고, 일이 그 부재였다.
세네카는 여가를 사유의 시간이라 불렀다. 키케로는 '품위 있는 여가(otium cum dignitate)'라는 표현을 썼는데, 여가에 품위를 얹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여가 자체가 이미 품위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2천 년이 지나도 그 감각은 이탈리아의 일상에 남아 있다.
작은 마을에 가면 저녁 무렵 독특한 풍경이 보인다. 사람들이 집 앞에 의자를 꺼내 놓고 그냥 앉아 있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이웃과 한마디 나누고, 해가 기우는 걸 지켜본다. 손에 감자 껍질을 깎고 있는 할머니도 있고, 와인잔을 들고 있는 부부도 있다. 그 시간에 이름을 붙이자면, 돌체 파르 니엔테다.
파세자타(passeggiata)라 부르는 저녁 산책 문화도 있다. 오후 다섯 시에서 여덟 시 사이, 온 동네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목적지 없이 걷는다. 이웃과 인사하고, 광장 벤치에 앉고, 젤라토를 핥는다.
18세기 말, 이탈리아를 여행한 괴테는 기록을 남겼다. 이 사람들은 애쓰지 않는다, 그저 산다. 근면이 미덕인 북유럽에서 온 사람의 눈에, 이탈리아인의 삶은 이해 불가능하되 부러운 것이었다.
내가 피렌체 식당에서 목격한 것도 그것이었다. 음식이 늦는 게 아니라, 음식이 나오기 전의 시간도 식사의 일부인 것. 기다림이 아니라 머무름.
파스타는 결국 25분쯤 지나서 나왔다. 맛있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을 생각하면 파스타의 맛보다 그 25분이 먼저 떠오른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던 그 시간. 나만 초조했던 그 시간. 친구는 괜찮아 보였다. 나보다 적응이 훨씬 빨랐다.
한국에서 식당에 앉으면, 시간은 언제나 적이다.
'주문 후 15분 이내 서빙'을 자랑하는 식당. 음식이 늦으면 벨을 누르는 손님. 빠르게 먹고 빠르게 나가는 점심시간. '빨리빨리'는 이미 외국인들도 아는 한국어가 되었다. 속도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이고, 그 속도 덕에 여기까지 왔다. 반도체도, KTX도, 배달 문화도.
문제는 속도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어에서 '느리다'는 거의 언제나 부정적이다. 느린 사람, 느린 서비스, 느린 성장. 반면 이탈리아어에서 피아노(piano)는 '느리게'인 동시에 '조용히, 부드럽게'라는 뜻이다. 느림에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는 언어와, 느림에 답답함이 깃들어 있는 언어.
한국어에도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를 묘사하는 말은 있다. 빈둥빈둥, 뒹굴거리다, 놀고먹다. 하나같이 판단이 깔려 있다. 빈둥거리는 사람은 뭔가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놀고먹는 사람은 비난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에 '달콤한'을 붙이는 언어와, '게으른'을 붙이는 언어. 단어가 감정의 방향을 정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밖에서 밥을 먹는다. 거래처, 저자, 파트너. 대부분의 식사에는 목적이 있다. 안건이 있고, 결론이 있고, 다음 일정이 있다. 식사 시간은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자원이다.
피렌체의 그 식당에는 안건이 없었다. 그냥 배가 고파서 들어갔을 뿐이다. 음식이 나오기 전 25분 동안 친구와 이야기했고, 음식을 먹으면서 또 이야기했고, 다 먹고 나서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상한 건, 그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식사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는 세계 5대 블루존 중 하나인 사르데냐가 있다. 장수하는 사람이 유독 많은 지역. 연구자들은 비결로 지중해식 식단만이 아니라, 서두르지 않는 삶의 태도를 꼽는다. 시간을 적으로 두지 않는 삶이 사람을 오래 살게 한다.
돌아와서도 그 감각이 한동안 남아 있었다. 점심 약속에 일찍 도착해서, 핸드폰을 꺼내지 않고 5분을 버텨봤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손이 주머니로 갔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충동. 5분의 빈 시간이 5분의 낭비처럼 느껴지는 체질.
돌체 파르 니엔테를 번역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이 되지만, 정확히는 번역이 안 된다. '달콤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달콤할 수 있다는 감각 자체가 한국어의 몸에 없다.
피렌체 식당의 그 중년 부부는 지금도 저녁마다 와인잔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음식이 나오든 말든, 시간을 잊은 채로. 그들에게 그 시간은 기다림이 아니다. 삶이다.
나는 아직도 5분을 못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