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것'의 저주

2026년 봄, 실리콘밸리를 지배하던 인공지능의 황제 오픈AI(OpenAI) 내부에서 '코드 레드(Code Red)'가 발령되었습니다. 그들의 위기감은 기술의 부재에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그들의 목을 조였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의 저주

Intro: 마법사들은 왜 펜을 꺾었는가

2026년 봄, 실리콘밸리를 지배하던 인공지능의 황제 오픈AI(OpenAI) 내부에서 '코드 레드(Code Red)'가 발령되었습니다. 그들의 위기감은 기술의 부재에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그들의 목을 조였습니다.

지난 몇 년간 오픈AI는 영상 생성 AI인 소라(Sora), 자체 웹 브라우저, 새로운 하드웨어 기기, 심지어 소셜미디어 기능까지 런칭하며 이른바 '모든 것을 동시에 하는(do everything all at once)' 전략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혹했습니다. 화려한 영상 생성기는 잠시 애플 앱스토어 1위를 차지했지만 이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그 사이 경쟁사인 앤스로픽(Anthropic)이 실리콘밸리의 B2B 생태계를 완전히 장악해버렸습니다.

결국 오픈AI의 리더십은 공식적으로 "사이드 퀘스트(Side Quests, 잡무/곁가지)를 멈추고 본업인 코딩과 기업용 생산성에 집중하겠다"며 백기를 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매우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왜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가진 기업이, 기술이 덜 화려한 기업에게 주도권을 빼앗겼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기능이 아닌 '결핍'을 파고드는 비즈니스의 진짜 본질을 마주하게 됩니다.


Chapter 1: '할 수 있는 것'의 저주와 기능 피로증(Feature Fatigue)

능력의 과시는 본질을 흐린다

경영학에서는 기업이 기존 제품에 끊임없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다가 결국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현상을 기능 피로증(Feature Fatigue)이라고 부릅니다. 기술력이 고도화될수록 엔지니어와 기획자들은 "우리가 이것도 할 수 있는데, 왜 안 해?"라는 함정에 빠집니다. 오픈AI가 정확히 이 함정에 빠졌습니다.

동영상을 뚝딱 만들어내고, 새로운 기기를 출시하는 것은 기업의 '능력(Capability)'을 과시하기엔 더없이 좋은 쇼케이스입니다. 하지만 소비자의 일상은 쇼케이스가 아닙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교수는 "고객은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발생한 특정 '임무(Job to be done)'를 해결하기 위해 제품을 고용(Hire)한다"고 통찰했습니다.

소비자는 오픈AI라는 마법사를 고용해 업무 시간을 줄이고 싶었지, 그들이 부리는 영상 마법 쇼를 매일 관람하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기업은 자신의 기술을 돋보이게 하는 데 집중하고, 정작 고객이 해결해야 할 '진짜 임무'는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Chapter 2: 샷건과 스나이퍼, 선택과 집중의 경제학

모든 것을 하는 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경쟁사인 앤스로픽(Anthropic)의 전략은 오픈AI와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은 산탄총(Shotgun)처럼 여기저기 쏘아대는 대신, 스나이퍼(Sniper)처럼 단 하나의 타깃만 조준했습니다. 바로 '기업용 시장(Enterprise)'과 '소프트웨어 개발자(Coding)'입니다. 앤스로픽은 이미지나 동영상 생성 기능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의 본원적 경쟁전략(Generic Strategies)에 따르면, 명확한 '집중(Focus)' 전략 없이 이것저것 시도하는 기업은 결국 '어중간한 상태(Stuck in the middle)'에 빠져 도태됩니다. 앤스로픽은 철저한 집중을 통해 개발자들 사이에서 "코딩은 무조건 클로드(Claude)"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습니다.

자원이 아무리 풍부한 빅테크 기업이라 할지라도, 연산 자원(Computing Power)과 조직의 집중력은 유한합니다. 오픈AI의 최고경영진이 "우리의 컴퓨팅 자원을 어떻게 할당할 것인가"를 두고 우왕좌왕하는 동안, 앤스로픽은 자신들의 모든 화력을 기업 고객의 생산성 향상에만 쏟아부었습니다. 이것이 화려하지 않은 앤스로픽이 시장의 지배자가 된 핵심 이유입니다.


Chapter 3: 비타민이 아닌 진통제를 팔아라

대중은 '마법'이 아니라 '생존'을 갈망한다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투자 격언 중 "비타민을 팔지 말고 진통제를 팔아라(Sell painkillers, not vitamins)"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타민은 먹으면 좋지만 안 먹는다고 당장 큰일이 나지는 않습니다. 반면 두통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진통제는 당장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구해야 하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오픈AI가 자랑했던 영상 생성기나 소셜 앱은 흥미로운 '비타민'이었습니다. 있으면 신기하고 재밌지만, 일반 기업의 B2B 고객들이 수천만 달러를 지불하면서까지 당장 도입해야 할 이유는 부족했습니다. 반면 앤스로픽이 고도화한 자율형 코딩 에이전트는 개발자 10명이 일주일 걸릴 일을 하루 만에 끝내주는 완벽한 '진통제'였습니다.

비즈니스의 본질은 기술의 우위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결핍(Deficit)을 메워주는 것입니다. 고객은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이것이 내 삶을, 내 비즈니스를 어떻게 구원해 줄 것인가?"에만 돈을 씁니다. 오픈AI는 이 단순한 진리를 잊었고, 혹독한 대가를 치른 뒤에야 다시 본질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Action Plan / Worksheet

당신의 비즈니스, 혹은 커리어를 다음 세 가지 질문으로 점검해 보십시오.

  • Q1. 당신은 진통제를 팔고 있습니까, 비타민을 팔고 있습니까?
  • 당신의 제품/서비스가 고객의 당면한 '고통(비용 낭비, 시간 부족, 리스크 등)'을 즉각적으로 해결합니까, 아니면 단순히 '있으면 좋은 것'에 머물고 있습니까?

  • Q2. 현재 진행 중인 '사이드 퀘스트'는 무엇입니까?
  • '할 수 있어서' 혹은 '멋있어 보여서' 유지하고 있는 기능이나 프로젝트가 있습니까? 핵심 고객의 본질적 결핍과 무관한 곁가지라면 과감히 잘라낼 수 있어야 합니다.

  • Q3. 고객이 당신을 고용(Hire)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 10가지를 할 줄 안다고 나열하지 마십시오. 고객의 머릿속에 각인될 단 하나의 압도적인 문제 해결 능력은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정의해 보십시오.


Epilogue: 가지를 쳐내야 뿌리가 깊어진다

화려한 것을 포기하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세상이 다채로운 혁신을 외칠 때, 투박한 본질 하나만 파고드는 것은 마치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위대한 성과는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됩니다.

오픈AI의 피벗(Pivot)은 실패의 인정이 아니라, 본질을 향한 뼈아픈 각성입니다. 당신의 무기가 너무 많아 무엇을 쥐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과감하게 사이드 퀘스트를 종료하십시오. 당신을 증명하려 하지 말고, 타인의 결핍을 채우십시오. 잔가지를 매정하게 쳐내는 사람만이 척박한 시장에서 가장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References

  • Wall Street Journal, "OpenAI to Cut Back on Side Projects in Push to ‘Nail’ Core Business" (Berber Jin, 2026.03.16)
  • Clayton M. Christensen, The Innovator's Solution (Harvard Business Review Press)
  • Michael E. Porter, Competitive Strategy: Techniques for Analyzing Industries and Competitors (Free Press)
  • Theodore Levitt, "Marketing Myopia" (Harvard Business Review, 1960)